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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1시간, 베란다 농부의 하루 루틴

careerhigh2 2025. 10. 12. 04:29

하루 종일 회사에서 쏟아낸 에너지를 끌어모아 퇴근길에 오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보통은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을 다르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스마트폰 대신 물조리개를 들고, 넥타이 대신 고무장갑을 끼고 베란다로 향한다. 퇴근 후 1시간, 나는 '베란다 농부'로 살아간다.
이 1시간은 단순히 채소를 키우는 시간이 아니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치유의 시간이다. 이 글에서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루틴이 된 퇴근 후 베란다 농사 1시간의 일상을 나눠보고자 한다.

퇴근 후 1시간, 베란다 농부의 하루 루틴


퇴근 후 베란다로 향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

회사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옷을 갈아입고 베란다 문을 여는 것이다. 공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저녁, 화분에서 퍼지는 흙 냄새와 초록 잎의 움직임이 나를 반긴다. 이 순간만큼은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전등 불빛 대신 노을이 남은 하늘빛에 의존하며 나는 조용히 식물들을 살핀다.

물은 너무 자주 주지 않기 때문에 매일 흙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손가락으로 흙을 눌러보며 수분을 체크하고, 잎에 먼지가 쌓였는지도 살펴본다. 식물의 상태를 관찰하는 이 10분이 루틴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명상'처럼 느껴진다. 아무 말 없이 초록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킨다.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식물이 전하는 조용한 신호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정돈된다.


물주기와 손질, 식물과 나누는 저녁 인사

식물에게 물을 주는 시간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대화에 가깝다. 나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 잘 지냈니?"라는 마음으로 물을 건넨다. 고추는 어제보다 조금 더 컸고, 상추는 바람에 시들한 기색을 보인다. 이런 변화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필요한 만큼만 물을 적셔준다.

이 시간에는 마른 잎을 떼어내고, 곁가지도 잘라낸다. 벌레가 붙어 있진 않은지, 잎에 상처는 없는지 살펴보며 세심하게 손을 움직인다. 직접 손으로 식물을 만지는 이 감각은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기계적이고 디지털화된 일상과 달리, 이곳에서는 느리고 정확한 손놀림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식물과의 이 조용한 교감은 나에게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확실한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


자급자족을 실천하며 느끼는 작은 성취

어느 날은 바질 잎 몇 장, 또 다른 날은 갓 딴 상추 한 줌을 거두어 들인다. 소소하지만 이 수확은 '내가 스스로 해낸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다. 단순히 식탁 위에 올릴 채소 한 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직접 키운 고추를 넣은 찌개, 베란다에서 따온 쑥갓으로 만든 국은 식사 이상의 만족을 준다.

이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소비 습관과 식생활까지 바꿔놓는다. 마트에서 충동적으로 장을 보기보다는,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채소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자급자족의 감각이 일상에 스며들고, 이는 삶을 더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된다. 퇴근 후의 1시간이 단지 힐링이 아닌 '생활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루의 끝에서 다시 나를 회복하는 시간

물주기를 마치고, 오늘 자란 정도를 기록하거나 간단히 사진을 찍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스마트폰 대신 식물의 자람을 기록하는 노트는 나의 하루일기이자 정서일지이기도 하다. 그날따라 바람이 차가웠는지, 해가 오래 머물렀는지, 어떤 식물이 활짝 피었는지 적어두다 보면 하루를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렇게 베란다에서의 짧은 1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와 있다. 회사에서의 역할, 사회 속의 무게감을 벗고 온전히 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베란다 농사는 거창하지 않다. 흙 한 줌, 씨앗 몇 알, 손끝의 감각. 그러나 그 작고 단순한 일들이 모여 삶의 중심을 회복시키는 깊은 루틴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퇴근 후, 조용히 베란다로 향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퇴근 후 1시간, 나는 더 이상 소모된 상태로 하루를 끝내지 않는다. 스마트폰 대신 흙을 만지고, 조용한 식물들과 교감하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생겼다. 베란다 농부로 사는 이 짧은 루틴은 작지만 확실한 회복의 루트다.
혹시 오늘 하루도 지쳤다면, 내일 저녁엔 물조리개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보자. 거기서 당신은 의외로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