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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고추, 상추, 쑥갓을 키우며 깨달은 것들

careerhigh2 2025. 10. 11. 22:29

도시 속 아파트에서 농작물을 키운다는 일은, 처음엔 그저 ‘작은 취미’에 불과했다. 하지만 고추, 상추, 쑥갓처럼 흔한 채소를 직접 심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사람은 삶의 태도와 시간을 대하는 방식까지 변화할 수 있음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흙 한 줌, 씨앗 몇 알, 햇볕과 물만으로 만들어지는 생명의 과정은 아파트 베란다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했고, 그 안에서 매일매일 작은 깨달음이 자라났다. 이 글에서는 한 도시 거주자가 아파트에서 고추, 상추, 쑥갓을 키우며 느낀 변화와 배움을 담백하게 정리해본다. 단순히 채소를 재배한 경험이 아닌, 삶의 리듬을 회복하고 자급자족의 가치를 되새긴 기록이다.

아파트에서 고추, 상추, 쑥갓을 키우며 깨달은 것들


고추를 키우며 배운 ‘기다림의 미학’

고추를 아파트에서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간단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씨앗을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리는 과정은 짧지 않았다. 고추는 느리게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까지 최소 몇 달이 걸린다. 매일 아침 창밖으로 고추 화분을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시간’의 가치를 배우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결과 중심으로, 빠르고 효율적인 처리를 요구받지만 고추는 그런 방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물을 너무 자주 주면 뿌리가 썩고, 햇빛이 모자라면 성장이 멈췄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 자연의 리듬에 맞춰가는 법을 익히는 동안 나는 무언가를 강제로 바꾸려 하지 않는 연습을 했다. 고추는 결국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랐고, 첫 열매를 수확하던 날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상추를 기르며 느낀 ‘반복의 안정감’

상추는 생각보다 빠르게 자라는 작물이다. 며칠만 지나도 눈에 띄게 잎이 커지고, 자르면 다시 자라나는 생명력 덕분에 자취방에서도 많이 키운다. 나는 상추를 키우며 ‘작은 반복이 주는 안정감’을 알게 되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물을 주고, 시든 잎은 손으로 따내며 관찰하는 그 단순한 행위는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뭔가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추는 그 보상을 분명히 줬다. 아침에 물을 주고 출근한 뒤, 퇴근하고 다시 본 상추가 하루 사이에 커 있는 걸 보면, 작더라도 꾸준한 행동이 결국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재배를 넘어서, 내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안정을 주는 힘이라는 걸 상추가 알려주었다.


쑥갓을 키우며 만난 ‘자연의 기복’

쑥갓은 고추나 상추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금방 시들고, 햇빛이 너무 강하면 잎이 마르는 등, 조절이 쉽지 않았다. 나는 쑥갓을 키우면서 '모든 것이 항상 잘 되지는 않는다'는 자연의 기복을 이해하게 되었다. 매일 열심히 돌봤다고 해서 항상 잘 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이유 없이 시들기도 했고, 벌레가 생겨 전체를 갈아엎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운다. 실패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을 찾고 환경을 바꾸며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쑥갓은 자라면서도, 자주 넘어졌다. 하지만 결국 자리를 잡고 어느 순간엔 무성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경험은 삶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패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지나쳐야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쑥갓은 조용히 가르쳐주었다.


아파트 텃밭이 남겨준 삶의 태도 변화

고추, 상추, 쑥갓. 세 작물 모두 키우기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른 성질과 요구 조건이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자연의 다양성과 생명의 개별성을 실감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 나에게는 어렵고, 반대로 나는 익숙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도전일 수 있다는 사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연습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 베란다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도 사람은 충분히 자급자족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샐러드 한 접시, 쌈밥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든 것에 대한 자존감'을 주었다. 마트에서 채소를 사는 것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롭지만, 그 속에서 사람은 삶의 속도와 가치를 다시 재정립하게 된다.

아파트 텃밭은 거창하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은 자연을 배우고, 반복을 통해 단단해지고, 실패를 인정하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결국 식물을 키우는 일이란, 식물을 돌보는 것 같지만 그 실상은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기도 했다.


마무리하며

아파트에서 고추, 상추, 쑥갓을 키우며 나는 자연을 가까이에서 경험했고, 동시에 내 삶의 태도와 리듬도 조금씩 바뀌었다. 도시 한복판의 좁은 베란다에서도 자연은 충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돌본 만큼 성장하고, 기다린 만큼 수확하게 된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진리를, 나는 식물들을 통해 배웠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베란다 농사를 시작할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