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풍요롭다’는 말을 들으면 돈이 많거나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떠올린다. 하지만 자급자족을 실천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왔던 ‘풍요’라는 개념이 얼마나 얕고 일방적이었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마트에 가면 언제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삶이 편리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소비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반면, 베란다에서 자란 상추 몇 장,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퇴비, 손으로 직접 만든 천연세제처럼 직접 해낸 작은 결과들은 단순한 만족을 넘어 깊은 충만감으로 이어졌다.
자급자족은 내게 ‘덜 가지는 삶’이 아니라, 더 충만하게 살아가는 삶이었다. 이 글은 그런 삶 속에서 내가 진짜로 느끼게 된 ‘풍요로움’의 의미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자급자족은 ‘갖는 것’보다 ‘만드는 것’에서 오는 풍요
예전에는 돈이 있어야 마음이 편했고, 사야지만 손에 쥐는 만족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일도, 소비도 모두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자급자족을 시작한 이후로는 ‘내가 직접 만든 것’이 주는 감정적 풍요가 진짜임을 알게 되었다.
텃밭에서 자란 고추 한 개, 쪽파 뿌리를 다시 심어 자란 초록 싹, 음식물 쓰레기를 천천히 발효시켜 만든 퇴비 한 줌. 이 모든 것은 그 자체로는 작고 소소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시간, 관심, 손길, 기다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언가를 스스로 만든다’는 것은 단지 물건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에 의미와 리듬을 되찾는 과정이었다. 사고 버리는 소비가 아닌, 키우고 채우는 생산의 과정을 통해 나는 더 이상 부족함에 민감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적게 가지면서도 훨씬 더 풍성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속도보다 깊이에 집중하게 되는 삶의 전환
자급자족은 빠르게 돌아가는 삶에서 천천히 흐르는 삶으로의 방향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상추는 물을 줬다고 당장 자라지 않고, 퇴비는 냄새와 시간이 함께 지나야 쓸 수 있다. 천연 세제는 적절한 비율과 숙성 과정이 있어야 하고, 계절에 따라 할 수 있는 작업도 달라진다.
이 모든 과정은 기다림의 미학과 깊은 관찰을 필요로 한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삶의 속도를 줄이고, 하루의 깊이에 집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하루를 얼마나 ‘빽빽하게 채웠는가’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졌다면, 지금은 하루에 단 한 가지라도 스스로 해냈는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전환은 마음의 여유를 만들었고, 불필요한 비교나 조급함에서 나를 해방시켰다. 천천히 살되, 더 깊이 있게 살게 된 지금의 일상은 그 어떤 소비보다 가치 있고 풍요롭게 느껴진다.
쓰레기가 아닌 자원이 되는 삶, 순환의 풍요로움
자급자족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순환’이라는 개념을 실감하게 된다.
예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고, 포장재를 보며 회의감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쓰레기가 퇴비가 되고, 그 퇴비가 식물을 키우고, 그 식물이 다시 내 밥상에 오르는 과정을 보며 '버려지는 게 없다’는 진짜 풍요를 느낀다.
그것은 단지 환경적인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감정도, 에너지도, 일상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감각이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날이 줄어들었고,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으며, 쓰레기가 줄어든 만큼 마음속의 복잡함도 정리되었다.
순환의 감각은 삶에 불필요한 집착과 소모를 줄여주었고, 지속 가능성을 품은 삶이 곧 풍요로운 삶임을 알게 해주었다.
적게 가져도 만족하는 ‘내 안의 기준’이 생긴다
자급자족을 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삶의 기준이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생겼다는 것이다.
남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디서 무엇을 사는지에 신경 쓰던 삶은 이제 멀어졌다. 대신 나는 ‘오늘 내가 직접 키운 걸로 밥을 지었는가?’, ‘오늘 쓸 만큼만 만들고 소비했는가?’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런 기준은 나를 비교와 피로로부터 해방시켰다.
더 많이 가져야 안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내가 자급자족을 통해 발견한 진짜 풍요였다.
그 풍요는 계좌 잔고와도, 옷장의 수량과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더 깊이 바라보는 눈, 내가 만든 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작고 조용한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었다.
마무리하며
자급자족은 단지 상추를 키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의 속도를 바꾸고, 쓰레기를 줄이고, 나를 돌보는 방식의 전환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나는 지금 충분히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 감각으로 귀결된다.
풍요로움이란 결국, 더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느끼는 것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연결되는 것이다.
자급자족은 내게 ‘덜 가져도 더 만족스러운 삶’을 가르쳐주었고,
지금 나는 그 어떤 때보다 더 가볍고,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롭다.
'슬로우라이프 & 자급자족 라이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니 농법으로 한 달 식비를 절반으로 줄인 기록 (1) | 2025.10.13 |
|---|---|
| 아침에 딴 채소로 만든 첫 식사의 행복 (0) | 2025.10.13 |
| 쓰레기를 줄이고 삶을 채우는 제로웨이스트 가드닝 (0) | 2025.10.12 |
| 슬로우라이프가 직장인의 번아웃을 완화하는 과정 (0) | 2025.10.12 |
| 자급자족 입문자가 가장 많이 실수하는 5가지 (1) | 202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