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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기른 채소로 장바구니 비우기 실험

careerhigh2 2025. 10. 20. 06:28

주 2회는 꼭 마트에 가야 마음이 놓였던 내가 어느 날, 문득 질문을 던졌다. "내가 기른 채소로 장바구니를 비울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생활 방식을 근본부터 점검해보게 만든 출발점이었다. 냉장고는 늘 넘치고, 장바구니는 무겁기만 한데 정작 식탁은 단조롭고 음식물 쓰레기는 점점 늘고 있었다. 그래서 한 달간의 실험을 시작했다. 마트 장보기 품목을 최소화하고, 대신 내가 직접 기른 채소만으로 식탁을 구성해보자는 도전이었다. 이 글에서는 그 실험의 실제 과정과 결과, 그리고 직접 기른 채소가 생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솔직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장바구니가 비워지면서 오히려 마음이 채워졌던 경험, 지금부터 공유해보겠다.

직접 기른 채소로 장바구니 비우기 실험


실험의 시작, 직접 기른 채소만으로 식탁을 꾸려보다

실험은 일주일 단위로 진행했다. 첫째 주에는 냉장고 속 기존 식재료를 활용하고, 동시에 마트 장보기를 중단했다. 대신 내가 직접 기른 채소들을 중심으로 한 끼 식단을 구성했다. 베란다에는 상추, 쪽파, 바질, 깻잎이 있었고, 주방 창가에는 루꼴라와 바질이 자라고 있었다.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식사 준비에 대한 태도였다. 냉장고를 열어 보는 대신 베란다로 향하게 되었고, 무엇을 먹을지가 아닌, 오늘은 어떤 채소가 자랐는지부터 점검하는 습관이 생겼다. 상추가 충분히 자란 날에는 쌈밥을 만들었고, 깻잎이 향이 좋을 때는 계란말이에 넣어보았다. 조리법은 단순했지만, 채소 자체의 신선함이 모든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이 첫 주만으로도 ‘마트에 가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고기나 유제품 같은 필수 식재료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채소라는 큰 범위의 식재료를 자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식비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다.


장바구니 품목에서 하나씩 사라진 채소들

둘째 주부터는 마트 앱의 장바구니를 아예 비워보기로 했다. 기존에는 쌈채소, 양상추, 루꼴라, 쪽파, 바질, 허브 등이 고정 품목처럼 들어 있었는데, 이제 그 자리는 비워두었다. 대신 그 자리를 내가 기른 채소로 채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직접 기른 채소가 늘어날수록 '없어서 못 먹는 상황'이 줄어들었다. 상추가 떨어지면 그냥 쌈밥을 쉬었고, 루꼴라가 모자라면 바질로 향을 대신했다. 시장의 흐름이 아니라 식물의 성장 속도에 맞춰 식단을 맞추는 경험은 처음이었고, 식사가 자연과 함께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이 실험을 통해 느낀 건, 우리가 얼마나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소비하고 있었는가였다. 마트에 있는 모든 채소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처럼 여겼지만, 실제로는 없다고 굶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없으면 그에 맞게 조리법을 바꾸고, 더 단순하게 요리하게 되었다.


식비, 시간, 쓰레기까지 줄어든 예기치 못한 변화

채소 구매를 줄이자 가장 먼저 식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장바구니에서 채소만 제외해도 한 달 평균 4~5만 원의 지출이 줄었고, 특히 샐러드 채소나 허브류처럼 단가가 높은 품목이 빠지면서 효과는 더 컸다. 또 매번 장을 보며 마주하던 충동구매도 거의 사라졌다. "이거 하나쯤 더 사볼까?"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시간 절약도 크다. 매주 두세 번은 가야 했던 마트를 이제는 주 1회 이하로 줄였고, 온라인 장보기도 정기배송으로 전환하면서 ‘오늘 뭐 사야 하지?’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건 음식물 쓰레기였다. 채소를 직접 기르다 보니 소중하게 사용하게 되었고, 남김없이 먹는 습관이 생겼다.
시든 채소가 냉장고에서 썩는 일도 줄었고, 상한 채소를 버리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이 모든 변화는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라 작은 화분 몇 개에서 비롯된 변화였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손바닥만 한 자급이 생활의 흐름까지 바꾸어놓을 줄은 정말 몰랐다.


직접 기른 채소가 내게 가르쳐준 삶의 태도

이 실험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건 '스스로 해보는 것의 힘'이다. 식물을 키우는 건 손이 많이 가고, 날씨나 환경에 따라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 길러지는 기다림, 관찰, 책임감 같은 태도는 음식 그 이상의 가치를 준다.

특히 상추 잎 하나를 수확할 때, 나는 내 삶에 무언가를 더하지 않고 덜어내는 방식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마트 장바구니를 채울 때보다, 베란다에서 상추를 따는 일이 더 충만하게 느껴지는 경험은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감정적 만족을 줬다.

지금도 나는 마트를 가지 않겠다는 강박보다는, 최소한으로 살며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장바구니를 비운 자리에 들어온 건 단순한 채소 몇 포기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설계한다는 감각이었다.